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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책 Books

청소년 문학 추천 :: 이경혜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by 榮華 2020.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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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 거침없는 시절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 시기를 청소년기라 말한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 '그땐 그랬지' 하며 회상하는 일은 소년소녀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다. 여기 아직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않은 소년소녀가 있다.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소년인 채 사라져 버린 '재준'과 그런 재준을 보내지 못한 소녀 '유미'가 바로 그들이다.

 

저자는 평범하고, 무난하고, 아늑한 삶을 송두리 째 빼앗아버린 '죽음'을 주제로 소설을 그려냈다. 하지만 "내가 이글을 쓰면서 원했던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하고, 아늑한 삶이었습니다" 라는 작가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작가는 죽음과 평범,무난,아늑이라는 단어가 같은선상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아들 잃은 어머니의 울음을 막을 권리는 없을 테니까 

(p13)

 

 

소설은 재준의 일기장이 유미의 손으로 들어오며 시작된다. 재준의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건네받은 일기장. 이 일기장의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문구는 재준의 어머니가 유미를 부른 이유이자 재준의 죽음에 대한 추적의 출발이었다.

 

재준과 유미는 소위 말해 절친에 속하는 사이였다. 그들은 함께 있을 때 누구보다 거침없었고, 그 누구보다 대담했다. 그들은 마음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서로의 사랑을 응원해주는 조력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재준은 그런 유미를 두고 홀로 떠나버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유미는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접하고 혼란해한다. 의미심장한 문구에 유미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문장은 과연 재준이 자진해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일까.

 

 

죽는 건 정말로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아

(p91)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자 없을 것이며,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며 사는거지, 죽음을 갈망하며 살지 않는다. 그래서 재준의 문구는 더욱 의아하게 다가온다. 어째서 재준은 자신의 끝을 예언하는 문구를 남긴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평범하기 그지없던 재준이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이런 의문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유미에게 '어서 빨리 일기장을 넘겨봐' 라며 재촉하게 한다.

 

다행히도 일기장의 내용은 질풍노도의 청소년의 일기장으로만 보인다.실연에 대한 상실, 부모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우정. 그러나 한 가지 지속적으로 죽음에 대한 고찰의 기록들이 보인다. 일기장을 통해 재준이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 자신이 죽는다면 남겨질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재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유미에게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오늘 그대는 살았는가
내일 그대는 살았는가

(p16)

 

 

사후 세계를 믿던 안믿던 간에 인간의 육체는 언젠가 의미를 잃는다. 영혼만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유미는 재준이 어디가에서 살아있다 생각한다. 그것이 육체의 존재를 잃었을지라도 말이다. 즉, 이 소설 속에서 '살아있다' '산다'는 건 단순히 육체의 실재만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살이있다'는 것은 육체의 실존여부와 상관없이 영혼의 유무를 뜻하며, '산다'는 것은 그 영혼과 공존한다는 뜻을 지닌다. 이렇듯 유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영혼의 형상으로 재준은 살아있는 거다. 그렇게 오늘도 살아있고, 내일도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처음의 화두로 돌아와 보자. 쓰는 동안 평범하고, 무난하고, 아늑한 삶을 원했던 저자는 재준과 유미의 사이를 단절시키지 않음으로써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재준의 죽음의 결말은 비극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 세계를 둘러싸며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어쩌면 무엇보다 평범하게 느껴지는 질병, 사랑, 우정, 죽음 등을 이야기 하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했다. 이는 저자가 원했던 평범, 무난, 아늑과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그토록 평범, 무난, 아늑을 원했던 것일까?

 

사실, 이 책은 저자가 남자가 되지 못하고 소년인 채로 사라져 버린 수많은 청소년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다. 저자는 "이미 사라져 간 그들을 유별나고,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 말한다. 글에서나마 잠깐이라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는 거다.

 

재준이나 유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던 저자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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