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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책 Books

서스펜스 스릴러 :: 기욤 뮈소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by 榮華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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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입장에서 글의 창조주인 작가에 대해 일말의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더군다나 글의 독창성을 인정받은 작가일수록 대중들로 하여금 더욱 이목을 끌게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작가의 상상력의 근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 속에서 무엇이 이 글을 쓰도록 했는지. 도대체 작가는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등 다양한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삶'이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최근에는 작가의 TV출현, 작가와의 만남,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작가의 소통이 활발해졌다. 이는 독자들이 작가의 삶을 비교적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베일에 감춰졌던 작가의 삶은 대중들에게 쉽게 공개되었고, 친근한 이미지를 형성한 작가들도 적잖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 흐름을 역행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기욤뮈소의 신작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의 주인공 '네이선 파울스'다.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1999년 돌연 절필 선언을 하고 은둔생활을 시작한 그는 20여년이 지나도록 대중들 앞에 나서지 않을 뿐더러 인터뷰조차 응하지 않으며 베일에 감춰진 삶을 살고 있다.

작가의 삶 , 그 이면 속으로

© yirage, 출처 Unsplash

자기 내면에 아직 풀어놓지 않은 이야기보따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고약한 불안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라 닐 허스턴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p108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숨기면 숨길수록 궁금증을 유발하여 더 큰 이슈를 만들어 내 역효과가 일어난다는 뜻으로 마케팅 용어로 자주 쓰인다. 네이선 파울스의 은둔생활은 대중들로 하여금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궁금증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을 보몽 섬으로 불러들였다. 소설 속 '라파엘 바타유'와 '마틸드 몽네'가 그러했다.

작가지망생인 라파엘은 자신의 우상 네이선 파울스를 만나고자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그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보몽 섬'으로 향한다. 그와 같은 시기에 《르 탕》지 기자인 마틸드도 네이선의 비밀스러운 삶을 파헤치기 위해 보몽 섬에 머무르게 된다. 네이선 파울스의 은둔생활의 비밀이 이들을 보몽 섬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바로 그 때, 보몽 섬에서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섬의 출입을 금지하는 봉쇄령을 내리게 된다.

보몽 섬이라는 육지로부터 독립되고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을 배경으로 일어난 살인사건은 평화로웠던 보몽 섬의 고요함을 산산조각 내 버린다. 평온하고 안전한 곳으로 묘사된 이 공간은 발견된 시신의 참혹함을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출입을 통제하여 섬을 고립시킴으로써 그 어떤 탈출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은 폐쇄적 공간에 놓인 인물들의 공포를 증폭시킨다. 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등장인물을 보는 독자들 또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특징은 흔히 서스펜스 소설에서 접할 수 있는 장치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삶

© artlasovsky, 출처 Unsplash

작가로 산다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삶이니까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p53

그렇다면 이 소설의 차별화된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그건 바로 '작가'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한편의 에세이를 연상케 하는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작가의 삶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기욤뮈소는 주인공인 네이선의 대사나 인용구들을 통해 작가에 대한 고찰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사실, 이번 주제에 대한 기욤뮈소의 애착은 이전에 출간 된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 속에서는 각 장이 시작될 때는 물론이고 등장인물을 통해서 유명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작가에 대한 성찰적 문구들인데 특이점은 거의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 속 중심에 있으면서 유일무이한 작가로 그려지는 네이선 또한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다.

소설의 제목만으로 저자인 기욤뮈소가 투영되어 소설 속에 녹아있지 않을까 할 수 있겠지만 인용구는 물론이고 네이선의 뾰족하게 날이 선 대사들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견해를 보여 혼란스럽기까지하다. 과연 이는 기욤뮈소가 투영된 결과인 걸까.

 

이에 대한 가장 근접한 답은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기욤뮈소의 추가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저자는 밀란 쿤데라, J.D 샐린저, 필립 로스, 엘레나 페란테 등 언론을 기피하고 다소 냉소적인 작가들을 언급하며 이들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인물이 '네이선 파울스'라고 설명한다. 즉, 기욤뮈소는 이들을 본 삼아 '네이선 파울스'라는 인물로 점철시킨 것이다. 따라서 네이선의 행동과 대사들은 이들에 대한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유동적인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적 작가들과 소설 밖 창조주로서의 작가의 역할을 모두 해낸 기욤뮈소는 가히 천의 얼굴을 지닌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마트료시카 같은 삶

© nile, 출처 Pixabay

진실을 말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진실은 단 하나뿐이므로.
그런데 그 진실은 살아 움직이고, 따라서 진실의 얼굴은 변하기 마련이므로.

-프란츠 카프카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p251

이 소설의 구성이 다소 복잡하다고 느끼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기욤뮈소가 쓴 소설 안에 라파엘이 쓴 동명의 소설이 존재하니 말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설명하듯 격자 소설의 구성으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골격을 지닌 이 소설을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 (인형 속의 인형)에 비유한 옮긴이의 말처럼 끝까지 벗겨봐야 하는 소설이다. 진실이 뒤바뀌는 과정 속에서 밝혀지는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의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욤뮈소가 준비한 마지막 작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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