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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Note/공부 Study

보부상 패랭이 양쪽에 목화솜이 두개인 이유를 아시나요?

by 榮華 2019.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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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빛나다, 榮華입니다.

오늘날 여러 영상매체 속에서 보부상의 등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부상의 패랭이(모자)에 주목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번이라도 보부상의 패랭이를 주의깊게 보신 분이라면, 이런 의문 한번쯤 들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패랭이 위 양쪽에 저 하얀 솜뭉치들은 뭐야'하고 말이죠. '보부상의 표시인가?' 혹은 '유행인가? 나름 멋인건가?' 하고 생각 하셨다면 오늘의 포스팅에 집중해주세요! 다들 사연이 있는 솜뭉치들이니까 말이죠(◕‿◕)♡

 


 

 

보부상이란?

보부상은 조선시대에 향시(鄕市), 즉 지방의 정기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行商)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경제적 교환을 매개로 하던 전문적인 시장 상인입니다. 보부상은 부보상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범위로 형성되어 있는 시장을 돌면서 각 지방의 물품 교환을 촉진하였습니다. 보부상은 시장을 돌아다니는 일반 장돌뱅이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조직을 군현이나 비변사(조선시대, 군국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등에 공인받고 독점권을 행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부상은 봇짐장수, 등짐장수, 황아장수, 돌짐장수, 장꾼 등등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등짐장수와 돌짐장수는 나무그릇˙토기 등과 같은 비교적 조잡한 일용품을 상품으로 하여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부상을, 봇짐장수와 황아장수는 비교적 값비산 필묵, 금˙은˙동 제품 등과 같은 정밀한 세공품을 보자기에 사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는 보상을 뜻합니다.

 

 

 

보부상 패랭이 양쪽에 목화송이의 기원

고려말 장수였던 이성계가 변방에서 교전을 하던 도중 부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를 돕던 보부상 중에 목화장수가 있었고, 목화로 상처를 응급치료를 하며 위급한 상황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 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이를 기념하며 보부상의 패랭이 왼편에 목화송이를 달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으로 피난가 있던 임금(인조)이 약간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때 역시 솜장사를 하는 보부상에 의해 상처를 치료받았고, 난이 지나간 후 임금이 그럴 포상하고 태조의 고사를 따라 이번에는 오른편에 목화송이를 달게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어떤 전서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후 조총이 들어와 발탄할 때 솜뭉치를 사용하는 일이 늘어 군사적인 목적으로 패랭이 위에 솜을 달고 다니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 

보부상 패랭이위의 목화솜의 기원(문화콘텐츠닷컴(상인과 상업활동),2003,한국콘텐츠진흥원)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보부상문서( 심재우, 2009, 국사편찬위원회)

 

이미지

EBS 역사채널e <보부상>

태조 어진

드라마 <화정> 인조 役 김재원

신비한TV서프라이즈<보부상을 상징하는 목화솜 달린 패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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